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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5 예수 십자가의 죽음 (마 16:21-28)
작성일 :  2020-06-24 13:22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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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십자가는 신구약 전 성경의 요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예수께서 친히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은 후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비로소 제자들에게 공개한 사실을 봅니다. 우리 함께 주님의 수난을 앞에 두고 예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예수 십자가의 죽음!

 

  一.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입니다.

  본문 21절은 예수님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야만 한다고 그 필연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요 큰 임금의 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본래 가나안 땅에 있었던 밀로(Millo)라는 작은 성읍이었습니다(삼하5:6-10). 다윗이 즉위하여 헤브론에서 그의 도읍지를 이곳으로 옮긴 후부터 평화의 성으로 역사상 이름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예루살렘은 솔로몬 대왕의 정치 중심지를 이루웠고 그가 건축한 성전으로 말미암아 선민예배 중심지를 이루어 명실공히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사의 변천에 따라 예루살렘은 열강들, 곧 페르샤, 헬라, 로마 등 제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보존되어 왔습니다. 예루살렘은 여러 번의 십자군 전쟁의 근원지가 되었고 그 후 오랫동안 터키(오스만 투르크) 손에 있다가 1917년 연합군이 점령해 왔는데 1948년 유엔의 승인하에 독립한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온갖 역사의 정글 속에서 정치와 종교, 문화와 역사를 가지면서 숨 가쁜 피의 역사 3,000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겠다고 하시던 그때부터 약 800년전에 정복의 대왕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일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33세에 죽었습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예루살렘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청년의 예루살렘을 향한 역사의 향방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알렉산더는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생명의 피를 흘렸지만 예수는 반대로 수많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피를 흘렸습니다. 알렉산더는 칼로 세계의 왕좌를 정복했으나 예수는 사랑으로 모든 세계의 무덤을 정복했습니다. 알렉산더는 무력으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으나 예수는 사람들을 온갖 유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해주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정복자로서의 화려한 역사를 기록하였으나 예수는 사랑과 평화, 그리고 영생을 주는 구원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알렉산더는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칼을 들고 피를 보려고 올라간 길인가 하면 예수는 작은 나귀 새끼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올라갔습니다. 중대한 뜻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다고 자신이 미리 공개한 사실입니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은 예수 십자가의 고장입니다.

 

  二. 많은 고난을 받는 죽음이라고 했습니다(21).

  본문에 많은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의 최고 법정입니다. 사형 판결권이 없던 저들은 예수를 사형에 해당하는 죄수를 고발하는 합법적 절차를 성립시켰습니다. 저들이 빌라도에게 고소한 죄목(罪目)백성을 미혹한다는 것으로 소위 민심 선동 소란죄에 해당하는 고발 건이었습니다. 가이사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입니다. 주님은 오히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교훈했습니다(22:21). 자칭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23:1-3). 그러나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18:36). 이 세가지 죄목은 모두 정치적인 것으로 그 목적은 예수를 사형에 해당되는 정치범으로 몰아세우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같은 저들의 주장이 음모임을 알았으나 정치가의 양심을 버리고 유대주의와 흥정하여 예수를 십자가의 사형수로 언도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진행된 많은 고난을 정리하면 동족에게 버림을 당하는 고난 이방법관에게 심문당하고 정죄를 받아 십자가의 사형수로 선고받은 일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 배은과 배신을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주님 자신이 당하는 영.육의 고통이었습니다. 불법적 윤회 재판입니다. 십자가 형틀을 짊어지고 사형장까지 걸어가신 고난입니다. 온갖 류의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과 침 뱉음과 채찍 맞음과 가시면류관, 십자가 형틀에 높이 달려 죽음에 이르는 극도의 고통입니다. 실로 많은 고난이었습니다. 전 우주와 인간계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전 인류가 받아야 할 비극이 함께 그에게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많은 고난이란 인류가 범한 죄 삯으로 한꺼번에 몰아닥친 총체적 고난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십자가의 죽음! 그것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은 죽음입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인류의 많은 죄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인류가 받아야 할 고통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많은 사랑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의 많은 고난은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많은 용서와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죄인이 존재할 동안(우리가 사는 날 동안)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죄인 된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영원히 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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